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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소설]狂氣의 構造 / 1996년 作 狂氣의 構造 / 1996년 作 狂氣도 전염되는 것일까, 이 어린아이들에게까지도? 재잘거리는 여자아이들의 음계 높은 재잘거림을 뒤로하며 교문을 나선다. 토요일의 방과후, 교문은 유달리 소란스럽다. 저마다 하나쯤의 약속을 가지고 있을 법한 환한 표정, 까르르 부서지는 웃음소리는 아직 학교 생활에 익숙하지 못한 초임 교사의 일주일치 피로를 말끔히 씻어 주기에 충분한 것이다. 꽉 짜여진 학교 수업, 학원 시간표에 이리저리 떠밀려 다니며 등에 짊어진 묵직한 가방의 무게로 삶의 무게를 지레 짐작해버린 아이들에게도 토요일은 넉넉한 해방감을 주기에 충분한 날일 것이다. 아, 그 맑은 아이들의 눈동자란. 아이가 아이다운 것을 볼 때의 마음은 왜 그리도 넉넉하고 흐뭇한 것인지. 내가 이 중학교에 부임한 지도 어느새 두 달.. 더보기
[짧은소설]병아리 / 1996년 作 병아리 /1996년 作 진달래 잎새마다 햇빛 잘게 부서지는 교정을 오르며 당신의 생각을 했습니다.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조금은 버거워 보이는 가방을 메고 등교하는 여자아이들의 음계 높은 재잘거림을 들으며, 투명하게 반짝거리던 당신의 눈동자와 해맑은 웃음이 생각났던 것 뿐이지요. 오늘 수업은 하루종일 엉망이었습니다. 상자 속에 조심스레 넣어 둔 병아리가 걱정되어서였습니다. 혹 모이가 떨어진 것은 아닐까, 병이나 나지 않았을까 하면서... 병아리에게 혹시나 해코지를 하지 않을까 걱정되어 마루 한 귀퉁이에 매어 둔 나의 강아지, 아지에게 미안하기도 하고... 갑자기 웬 병아리냐고 물으실 지 모르겠습니다. 어제의 일이었지요. 교문을 나서 골목을 돌아 집으로 향해 가는 길, 네모난 상자 가득 병아.. 더보기
[자작판타지비스무레]바람의 통로 / 1996년 作 바람의 통로 / 1996년 作 달포째 상서롭지 않은 서풍이 이 마을을 서성거렸다. 바람은 마을 서편에 두텁게 가로막고 있는 숲 나무들의 잎사귀를 보듬고 들어와, 마치 오래전 고향을 떠났다가 돌아오는 나그네의 눈길처럼 마을의 구석구석을 두리번거렸다. 동으로 끝없이 펼쳐지는 바다, 남북으로 바람도 넘기 버거울 법한 높은 산맥, 그 사이에 펼쳐진 이 마을에 있어, 서쪽에 버티고 선 숲은 견고한 성벽이기도 했지만 바깥 세상으로 통하는 유일한 통로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 통로는 일년에 단 한 번, 서풍이 숲을 통해 불어오는 이맘때만 열린다고 이 마을의 사람들은 믿고 있었다. 바람이 두런거리며 숲을 가로질러 들어올 때, 나뭇가지들이 가리키는 반대 방향으로 따라가기만 하면 이 마을을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물론.. 더보기